불완전한 지금을 함께 짓는 일
의정부미술도서관 오픈스튜디오 8기 김남정 작가 비평글 - 이정주 Criticism — Lee Jeong Ju

최근 들어 ‘온기’라는 단어에 자주 마음이 머문다. 감각적인 말이지만, 지금의 세계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 낯섦의 연유를 더듬다 보니 김남정의 개인전 《1.2인의 요새》에 닿는다. 전시 도록의 마지막 장에 적힌 문구 “불안한 여정 속에서도 온기를 잃지 않기를” 는 이후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기원의 자리를 드러낸다. 그 울림은 내게 오래도록 배경처럼 작동하며, ‘온기’라는 말을 유난히 반복적으로 떠오르게 했다. 이 글은 그 흔적들을 다시 매만지며, ‘요새’라 불리는 구조 안에 남겨진 층위를 따라 읽어 내려가려는 시도다. 이를 통해 이번 의정부미술도서관 오픈스튜디오 작가 결과보고전 《도서관 속 작업실 Ⅳ》와 이어지는 맥락을 짚어보고자 한다.

1.

김남정은 건축과 조경건축을 전공하고 설계 실무를 거쳤다. 기능적 도면과 구체적 질서의 세계에서 그는 ‘삶을 짓는 일’을 배워 나갔지만, 동시에 그 한가운데서 피로와 어긋남을 감각했다. 도면 위의 세계와 현실의 공간 사이에는 언제나 틈이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그어진 선들은 현장에서 종종 배반되었다. 계획된 공간이 삶을 품지 못하는 장면, 개발의 논리에 자원이 소진되는 풍경, 시스템이 개인을 압도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이 세계를 어떻게 감당할지를 묻기 시작했다. 그 질문은 곧 ‘무력감’으로 응축되었고, 이는 작업으로의 전환을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설계와 시공 사이에서 느낀 균열은 단순히 전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왜 공간은 삶을 품지 못하는가. 왜 인간은 자신이 세운 구조 속에서 소외되는가. 그리고 그 소외를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구조를 다시 세워야 하는가. 그는 이 질문들을 안고 설계에서 작업으로, 기능에서 감정으로, 질서에서 틈으로 옮겨갔다. 그 이동의 길목에서 마주한 것이 개인전 《1.2인의 요새》였다. 이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위한 구조적 틈이었다. ‘나’의 고립과 연약함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타자를 향한 접촉과 나눔의 가능성으로 확장한다. 전시의 제목에서 ‘1.2인’이라는 단위는 수치가 아니라 감각이다. 하나와 둘 사이의 간극, 닫힘과 열림 사이의 윤리적 여백을 가리킨다. 0.2만큼을 타자에게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물음은 공동체적 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된다. 그 물음은 작업의 태도에서도 이어진다. 김남정에게 작업은 “하루하루 긋는 행위”다. 그날의 감정을 구조라는 형식 안에 잠시 머물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요새는 닫히지 않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는다. 그것은 무력함의 수동성이 아니라, 신념의 지속성이다. 외부의 구조를 설계하던 사람이 이제 자신의 내면을 감싸는 구조를 짓는다. 이는 해답을 내리기 위한 설계가 아니라, 질문을 견디기 위한 장소다. 그렇게 형성된 구조들은 ‘요새’, ‘기록’, ‘온기’라는 키워드로 응축되어, 연약함과 나눔을 동시에 제시한다.

2.

전시의 출발점이 되는 〈요새〉는 이름과 달리 방어나 차단을 위한 구조물이 아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세계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마련된 임시 구조이자, 말을 잃은 채 견뎌야 했던 시간의 기록이다. 목재로 짜인 틀, 얇은 비닐천, 따뜻한 조명은 하나의 신체처럼 작동하지만, 결코 완결을 향하지 않는다. 집도 방도 아닌 ‘있는 듯 없는’ 자리, 그 안에는 단단함과 연약함, 닫힘과 열림이 공존한다. 작가가 말했듯, 이 구조는 기도에 가까운 상태다. 경계를 세우기보다 회복을 위한 틈을 열고, 방어보다는 환대를 위한 선언으로 기능한다. 〈The Search Light〉는 바닥에서 솟아오른 불안정한 기둥과 그 끝에 장착된 열 개의 조명으로 이루어진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은 빛은 천장과 벽을 교차하며 흔들리고, 어긋난 좌표를 그린다. 이는 ‘진실의 좌표를 찾기 위한 나만의 지도’라는 작가의 언급처럼, 진실을 탐색하는 일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불안한지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작동하며,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비추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작업은 내부에 머물던 〈요새〉로부터 한 걸음 나아간, 바깥을 향한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전시장의 이 빛은 관람자의 몸을 스치며, 각자의 ‘탐색하는 몸짓’을 불러낸다. 〈To Excavate〉는 물리적 창문이 아니라 폐쇄된 구조에 틈을 내는 행위다. 두려움과 열망이 교차하는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들며, 내부와 외부는 다시 서로를 인지한다. 오랫동안 고립에 머물던 이는 마침내 바깥을 향한 결심에 이른다. 창을 파낸다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감정의 전환이다. 과장된 선언이 아니라 벽에 귀 기울이듯 조용히 타인의 존재를 감지하는 방식이다. 작은 균열 하나가 만들어내는 전환은, 세계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미세한 호흡이 된다. 〈What Stands and What Falls〉는 곧게 선 목재와 주저앉은 메쉬 구조의 대비를 통해 삶의 균형과 붕괴를 동시에 드러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 있는 것보다 무너지는 순간이다. 작가에게 무너짐은 실패가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장치이자 새로운 시작의 조건이다. 좌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는 다시 시작을 위한 발판이 된다. 이 작업은 연약함을 결함이 아니라 존엄한 정서로, ‘받아들임’의 윤리로 제안한다. 무너진 구조 앞에서 자기 안의 균열을 떠올리고, 그 균열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읽는다. 〈Molding Triumph of Arch〉는 고전적 개선문 형식을 차용하지만, 승리의 상징 대신 형성의 과정을 드러낸다. 휘어진 목재와 어긋난 중심축은 단단한 완결보다 유연한 진행을 강조한다. 아치는 여전히 형성 중이며, 그 불완전 속에서 감정의 긴장이 드러난다. 아름다움은 완결이 아니라, 형성과 해체가 교차하는 순간 자체에 있다. 우리는 이 어긋난 아치를 통과하며, 완성되지 않은 세계 속에서 ‘지금 여기’를 감각한다. 〈Mapping〉은 기존 작업 〈개선문 Ⅰ〉을 해체하고 재조합한 구조다. 위엄을 상징하던 아치가 사라지자 균형과 방향은 다시 질문된다. 조각난 기둥, 뒤집힌 목재, 원형 목판들은 단일한 질서에 속하지 않은 채 서로를 지탱하며 놓여 있다. 이는 무너진 것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파편을 다시 배열해보려는 실험이다. 명확한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몸짓이며, 실패와 회복, 포기와 가능성이 공존하는 장면이다. 아치를 잃은 자리에서 시작된 이 구성은 남겨진 것을 단순히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그리며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Shorts〉는 전시의 연장선에서 구성된 네 개의 영상 단편으로, 서로 다른 시간의 감각을 기록한다. ‘안/밖’, ‘날 세기’, ‘경계 너머’, ‘빛을 켜는 손짓’이라는 소제목 아래, 구조물 안에서의 신체, 불빛의 변화, 시선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영상은 명확한 서사를 제시하지 않고, 전시 속 구조물들이 품은 시간과 감정의 흐름을 담는다. 반복되는 동작과 여백을 통해 요새 안에 머무는 존재의 상태가 간접적으로 체감된다. 전시가 공간의 언어라면, 〈Shorts〉는 그것을 시간의 언어로 변주한 실험이다. 김남정의 임시 구조물들은 기능보다 감정에, 정답보다 질문에 더 오래 머물게 하며, 작가 스스로도 여전히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특히 ‘온기’라는 비물질적 감각을 중심에 둔다. 그것은 단순한 온도나 친밀감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를 전제하며 공간을 설계하는 태도다. 창을 파내고, 틈을 남기고, 벽을 비워두는 구조들은 서로를 향한 작은 예비 공간들이다. 작가는 끝내 구조 안에 머무르지 않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것이 《1.2인의 요새》전의 윤리이며, 미학이며, 기도이다. 온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말이 오가기 전, 기능이 작동하기 전, 사려 깊게 남겨진 자리를 통해.

3.

작가는 지금, 또 다른 전시 속에 서 있다. 이번 오픈스튜디오 작가 결과보고전 《도서관 속 작업실 Ⅳ》에서 그는 〈개선문 Ⅰ〉을 지나 〈What Stands and What Falls〉와 〈요새〉를 거쳐 〈개선문 Ⅱ v.2〉와 〈To Excavate〉, 〈The Search Light〉로 이어지는 여정을 펼친다. 그 끝에는 〈Light Chasing Crowd〉가 기다린다. 야외에 설치된 〈Floating Signals〉은 이 반복되는 여정을 예고하듯 반짝이며 펄럭인다. 이번 전시는 ‘미술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작업과 사유가 겹쳐 쌓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김남정은 끝내 완결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다정하고 묵묵히, 아직 닫히지 않은 구조들을 드러낸다. 그곳은 말해지지 않은 시간이 머무는 자리이며, 우리는 그 속을 지나며 잠시 숨을 고른다. 그 숨은 곧 말이 되고, 말은 관계로, 관계는 다시 구조로 이어진다. 작가가 열어둔 그 길 위에서, 흙의 품 안에서, 빛의 지도를 따라 우리는 지그재그의 여정을 이어간다. 그 여정 속에서 의심과 멈춤, 탈주의 상상은 현실로 번지며 지난한 날들을 위로한다. 각자의 개선문은 저마다의 무늬와 질감으로 반짝이고, 서로의 요새에서 감지된 온기 위에서 우리는 불완전한 지금을 함께한다.